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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xing Helena ] 1933 / Jennifer Lynch
예전에 대학교 다닐 때, (아마도 일학년 때였던 거 같다) 이런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위의 그림이 그 영화의 포스터이다. Boxing Helena, 제목만 보면 마치 헬레나라는 여자가 권투를 하는 영화인 듯 하다. 제목이 처음에는 매우 애매하다. 이게 뭔 뜻일까... 고민을 하게 되는 제목, 하지만 영화를 보면 이 제목에 얼마나 잘 맞는 것인지 알게 되고, 얼마나 섬뜩한 것인지 알게 된다.
주인공은 의사인 한 남자다. 그리고 그 의사가 사랑하는 옆집 여자. 이 여자는 의사의 사랑을 알지만,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다 의사 집앞에서 여자는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 의사에 의해 집으로 옮겨진다.
여기서부터 얘기는 좀 살벌해진다. 처음으로 여자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된 의사는 여자가 나아 자신을 떠나게 되는게 두려워진다. 그래서 여자의 부러진 다리가 나아갈즘 다리를 자른다. 여자는 이제 사정을 알게 되고 자신을 풀어달라고 소리를 치며 울부짓는다. 그러자 이번에는 팔을 자른다. 이제 여자는 포기한다. 이제 제목이 이해가 갈 것이다. 여자는 팔다리가 잘려서 말 그대로 Box 형태로 된 것이다.
난 여기까지 본 거 같다. 그 이후는 기억이 안나는 것을 보니..
갑자기 요즘 완전히 기억 저편에 묻혀있던 이 영화가 생각났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저렇게 자르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럴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또는 옳다고 믿는 모습대로 저렇게 재단하고 있지 않는가? 성적이라는 칼로, 혹은 종교라는 칼로, 혹은 상식이라는 칼로 서로를 마구 자르고 있지 않은가? 난 이럴 때면 가슴이 섬뜩해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내가 그러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 지금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걱정.. 그리고 이런 중요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데서 오는 절망.. 그러면 결론은 항상 뻔해진다.
인간에게 과연 희망은 있는가?
내가 혼자 고분군투해보아야 무슨 희망이 있을까? 하는 절망감. 한 때 이 절망감이 나를 중으로 만들 뻔 했다. 드러운 세상 그냥 떠나고 말지라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그렇지는 않다.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절망적인지도 모른다. 너무 뻔해보이는 길을, 인정받지 못하고, 아무 가치없어 보이는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절망감. 그리고 막막함..
용기, 의지라는 것은 이 상황을 얼마나 오래, 잘 견딜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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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내가 그러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
완전 동감.. ㅋ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항상 뒤 돌아보고.....
화이팅!
그렇지..
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는 말처럼..
언제까지 저런 염세적인 글이나 끄적댈건가...그리고 자네 예수 믿는다면서...?
응? 자넨 누군가?
그리고 자네는 염세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구별 못하나?
긍정적인 눈으로보면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나? 장미를 피우려면 먼저 쓰레기를 비워야지..
그럼 인간이 다 쓰레기 같은 존재인데 다 죽으라는 의미인가? 하긴 그래서 예수가 대신 죽은 것인가?
근데 자네가 말한 것처럼 인정받지 못하고, 아무 가치없어 보이는 길을 이미 예수가 걸어가셨고 그 결말은 결코 뻔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네만...예수쟁이는 그걸 알기에 기꺼이 그 길을 따라가는거 아닌가? 난 그렇게 알고 있네만...그런자에게 절망감과 막막함이라니...별로 안어울려 보여서 그냥 해 본 말이니 너무 발끈하지는 말게나.
난 자네 글의 저 결말이 별로일쎄...자네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게나...지극히 현실적인 말인것에는 100% 동감하네만, 저런 결말이라면 자네가 예수 믿는다는거 좀 의심스럽네...
답답하구만.. 자네같은 예수쟁이들이 많아서 이 나라가 이 모양아닌가..
현실을 직시하고, 그 절망과 막막함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 무슨 인생의 깊이와 치열함을 바란단 말인가? 예수없이는 절망과 막막함 뿐이지만 이걸 극복하게 하는 것이 예수아닌가? 내 말은 극복이란 것은 그 이전의 절망과 막막함을 전제해야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일세. 세상 너무 단순하게 보지 말게나..
현실과 이상 사이엔 괴리가 있다. 그러나 실천은 그것을 매개한다.
그렇지. 좋은 말이구만.
반드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경험해야만 옳바른 실천이 나오는 것이지.
올.바.른
아.. 맞네.
요즘 왜 자꾸 맞춤법을 틀리지..
요즘 틀리는게 아니고 원래 못썼던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