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Category :: 생각들


예전 학교 다닐때, 학부에서 4.19 기념 신문 만든다고 해서 썼던 칼럼입니다. 새로운 글쓰기는 귀찮고, 놔두자니 썰렁하고 해서 올립니다. 쩝..


얼음처럼 차가웠던 빗발도, 살갗을 벗겨낼 듯 불어대던 바람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벚나무에서 꽃잎이 눈발처럼 날리고, 산들바람이 부드럽게 머리를 넘겨주는 4월이 돌아왔다. 이런 꽃다운 봄날, 연인과 봄날을 즐기느라 바쁜, 혹은 그 연인들을 부러워하느라 정신없는 우리의 귓가를 간질이는 것이 있다. 바로 ‘4․19’이다. 아직은 길지 않은 초봄의 오후가 스르륵 저물어 따뜻한 햇살이 산 뒤로 넘어가면 아직은 쌀쌀한 밤바람이 우리를 방으로 몰아댄다. 아직도 아지랑이처럼 남아있는 나른한 봄기운을 즐기면 우리는 뭔가 소일거리를 찾는다. 이라크 전 속보를 보다가, 혹은 개그콘서트를 보다, 아니면 i2를 뒤적이다가 불현듯 하루 종일 우리의 귓가에서 지분거리던 녀석의 정체를 깨닫는다. “아.. 오늘이 4․19였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별로 관심도 없는 먼 옛날 일처럼 여겨지는 4.19에 관한 이런 저런 말들. 지나가는 봄바람처럼 귓가를 간지러대는 추모행사니, 기념행사니 하는 것들. 모두들 대학생이라면, 지성인이라면 4.19에 대해서 알아야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1960년 4월 19일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하는가? 4.19와 우리는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T. S. Eliot의 'Four Quartets'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우리말로 바꾸어 보면, 우리는 탐구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탐구의 목적은 우리가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 그곳이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시는 고갱의 질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은, 또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안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는 것은 우리의 과거이다. 우리의 미래는 현재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우리의 물음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출발한 곳,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길인 ‘과거’에 있다. 이 ‘과거’에 대한 기록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역사는 수많은 과거의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해석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에 일어났던 무한한 사건들을 다 기록한다거나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 즉 우리의 현재의 모습에 큰 영향을 준 사건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과거를 해석한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4.19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4.19는 현재의 우리를 설명해 주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또는 우리의 선배들이 과거에 겪어왔던 여러 사건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6.25를, 미군정을, 빨치산을, 그리고 4.19와 5.16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우리의 모습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한국인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왜 우리가 지금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알아야 하는가?” 사실 우리의 모습을 안다는 것은, 우리의 모습을 결정지은 과거를 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괴로운 일일 것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괴로운 작업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는 인간이면 누구나 물을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물론, 이러한 질문을 외면하고도 잘 살수 있다. 어쩌면 저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품안에서 어머니만을 바라보고, 어머니의 젖만을 먹고, 모든 문제를 어머니가 해결해주는 갓난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것이다. 그에게 무슨 걱정이 있으랴? 하지만 우리는 점점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되고, 여러 가지 문제에 부닥치고, 어머니의 젖만이 아닌 다양한 맛의 음식을 먹게 된다. 이것은 점점 우리를 괴롭게 하는 과정이다.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우리는 ‘성숙’이라고 부른다. 한 가지만, 한 면만 보던 아이에서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는 어른으로, 한 가지만 먹던 생활에서 다양한 맛을 경험하는 생활로, 모든 문제를 남이 해결해주는 상태에서 괴롭지만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는 상태로의 이행.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다. 자신의 주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되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성숙한 인간으로의 첫걸음이다. 이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역사는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4.19가 민주항쟁이 될 수도 있고, 혁명이 될 수도 있고, 폭력적인 난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들을 어떤 틀을 가지고 바라보는가가 결국 지금 우리를 이해하는 틀이 되고, 나아가 우리가 어디로 가는 지를 보는 안경이 된다.

결국, 모든 질문의 해답은 ‘역사의식’으로 귀결된다. 역사의식이란 역사를 보는 관점이다. 역사를 어떠한 관점에서 볼 것인가, 역사적인 사건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할 것인가가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다.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 모든 질문은 우리가 과거에 어떤 사건들을 겪어왔는가가 말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어떤 식으로 과거의 사건을 이해하는가가 결정한다. 나는 4.19의 정신을 계승하여 민주화항쟁을 하자거나, 학생의 힘으로 정치를 바로잡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우리가, 우리민족이 누구인지를 알자는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들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4.19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해함으로써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고갱이 우리에게 던졌던 질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4.19라는 역사적 사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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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7 18:58 2005/11/0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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